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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정치/유럽 그 외

[속보] 불가리아 총선 최종결과.jpg

by 아스트로패스 2022. 10. 5.

(BSPzB[BSP]: 불가리아를 위한 연합[불가리아 사회당], PP: 우리는 변화를 지속한다, DPS: 권리자유운동, ISBG: 일어서라 불가리아, DB: 불가리아 민주당, GERB–SDS: 불가리아 유럽발전시민당–민주세력동맹, ITN: 이런 사람들 당, BV: 일어나라 불가리아, V: 부활당, VMRO: 불가리아 국민운동)

 

2022년 불가리아 총선 최종결과(투표율: 39.40%[+0.83])

 

GERB(보수주의, 자유주의, 대중주의, 친EU): 25.33%(+2.59), 67석(+8)

PP(중도주의, 사회민주주의, 반부패, 친EU): 20.20%(-5.56), 53석(-14)

DPS(자유주의, 사회자유주의, 터키계 권익): 13.76%(+0.76), 36석(+2)

V(우익대중주의, 불가리아 민족주의, 반EU): 10.17%(+5.31), 27석(+14)

BSP(좌익민족주의, 대중주의, 친러파, 친EU): 9.30%(-0.91), 25석(-1)

DB(환경주의, 자유보수주의, 반부패, 친EU): 7.44%(+1.07), 20석(+4)

BV(포괄정당, 국민보수주의, 주권주의, 반EU): 4.62%(+4.62), 12석(+12)

ITN(대중주의, 직접민주주의, 반부패, 친EU): 3.83%(-5.69), 0석(-25)

ISBG(사회민주주의, 사회자유주의, 친EU): 1.01%(-1.71), 0석(=)

VMRO(불가리아 민족주의, 국수주의, 반EU): 0.81%(-0.27), 0석(=)

Others: 3.53%(-0.71), 0석(=)

 

연립여당 PP-BSP-DB 과반 확보 실패

제1야당 불가리아 유럽발전시민당 제1당 등극

극우 부활당 대중주의 물결 타고 제4당 등극

반EU 친러정당 일어나라 불가리아 원내 진입

 

 

전체 의석: 240석

과반 의석: 121석

비례대표 봉쇄조항선: 4%

 

 

지난 이야기:

https://blog.naver.com/gksejrdn7/222577826488

 

 

발칸반도 동부의 다뉴브강과 흑해 인근에 위치한 나라 불가리아에서 1년 반 동안 네 번째 치러진 총선이 10월 2일 시행되고 며칠 후 최종 개표된 결과, 여론조사와 흡사하게 나온 끝에 집권 제1여당 PP가 물가 문제 등에 타격을 입으며 1위에서 내려오고 제1야당 GERB가 1위에 올랐습니다.

 

한편, 연정 제2당 사회당은 정부를 지지하면서도 나름의 차이점과 존재감을 보여준 게 통했는지 마침내 내리막이 멈추며 지지층을 지켜내어 현상유지에 거의 성공하였으며, 연정 제3당 민주 불가리아는 비슷한 성향의 원외정당 ISBG 지지층을 거의 흡수하며 의석을 약간 불렸으나 연립 과반을 획득하는 데는 역부족이었습니다.

 

그러나 보이코프 총리의 부패스캔들 연루 문제로 여전히 상당수의 정당들이 GERB와의 연정 거부감을 보이는데다, 2017년처럼 강경 우파 정당들과 연정을 하려고 해도 새롭게 떠오른 정당들(V, BV)은 친러 성향이 두드러지는데다 그 둘론 과반 미달(106/240)이기에, 가능성이 희박한 이라도 타결되지 않는다면 빠른 시일 내에 5차 총선이 치러질 확률도 있습니다.

 

또한 근래 불가리아 정계의 고질적인 문제가 된 극도로 낮은 투표율 현상이 계속되는 단기간 만의 정부 붕괴로 인한 피로감 때문인지 여전히 개선되지 않으면서 차기 정부의 정통성에 있어서 다시금 부담감으로 다가오게 됐습니다.

 

불가리아는 2020-2021년 터키계+집시(로마) 저학력층 기반 정당 DPS 전 당대표의 비리 스캔들에 보이코 보리소프 유럽발전시민당 총리 내각 구성원 상당수가 연루되고, 이로 인해 사회당 출신 루멘 라데프 대통령과의 충돌이 격화된 상태에서 2021년 4월 4일 첫 총선을 치르게 됐습니다.

 

그 결과, 집권 유럽발전시민당이 득표율 대하락에도 불구하고 제1당 자리를 유지했습니다. 극우 정당들이 표 분산으로 원내 진입에 실패함에 따라 불가리아는 극우세력 상승세가 불발한 몇 안 되는 유럽국가 중 하나가 됐으며, 반대로 유럽연방주의 정당 Volt가 참여한 ISMV(일어나라, 마피아는 꺼져라!)가 원내 진입에 성공하면서 네덜란드에 이어 두 번째로 Volt가 원내 진출한 나라가 될 뻔했으나, 내부 비례 순위에서 밀리면서 성사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기존 연정 극우 정당들(VMRO, Volya – NFSB)의 부진과, 연립 제2당이던 애국연합(OP)의 붕괴 후 표 갈림(VMRO, NFSB, ATAKA) 때문에 원내 정당 대부분이 공적 자금 남용 부패 의혹에 휩싸인 보이코 보리소프 현 총리에게 적대적인 세력들로 채워지면서 연정 구성이 어렵게 됐습니다.

 

특히 또다른 중도우파 정당이던 개혁 연합(RB)과 중도좌파 정당 ABV – D21이 17년 총선에서 원외로 추락한 후 여러 갈래(RB: SDS -> GERB – SDS, DBG -> ISMV/ABV – D21: D21 -> ISMV)로 나뉘면서 신생 중도 야당들의 탄생에 상당한 영향을 끼친 것이 결정적이었습니다.

 

신규 원내 정당 중에서 유명 가수 스타니슬라프 트리포노프가 창당하고 정부의 봉쇄 정책을 비판하며 주목받은 ITN은 기존  모두와의 연정을 거부한 상황이며, DB ISMV는 아예  보리소프 시위 세력을 중심으로 만들어 졌기에 사회당과의 연정 또는 DPS와의 소수정부 구성 정도만 몇 안 되는 가능한 옵션으로 남은 상황이었습니다.

 

반면 제1야당 사회당 역시 반정부 여론만 믿고 시위 참여에만 열중하다가 코로나 사태 실질 대응 방안 및 경기부양책 등을 요구하던 지지층이 돌아서면서 갑작스레 3로 추락하는 등, 민심 이반으로 인한 타격이 이만저만이 아닌 상황이기에 대연정은 기득권 정치인들의 담합으로 간주될 위험이 있었습니다.

 

게다가 터키계+집시(로마) 기반 정당인 DPS와 연정을 구성하는 것은 불가리아 민족주의자가 상당한 우파 진영의 벌집을 쑤시는 것과 마찬가지 효과를 가져올 것으로 보였습니다.

 

거기에 더해 2020-21년 벌어진 대규모 반정부 시위를 촉발시킨 사건의 원인 제공자가 DPS였는데다, 야당 발 스캔들로 인해 관련된 내각 장관 다수가 교체되고 사회당 출신 대통령과 정면 충돌하는 당혹스러운 결과를 가져왔기에, 껄끄러운 과거를 감안해서라도 보리소프 총리가 쉬이 선택하기 힘든 사안이었습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친EU 중도 3당(ITN+DB+ISMV)의 연정 가능성 또한 거론되고 있으나, 이 역시 과반 확보를 위해선 DPS 또는 사회당과의 협력이 필수적이기에, 연정협상이 이어진 끝에 그나마 가능성이 높은 후자마저 실패할 경우 재총선이 치러질 가능성도 제기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우려는 현실이 되어 제1-3당 모두 연정 구성에 실패하면서 21년 7월 11일에 재총선을 실시하게 됐습니다. 그 결과, 이런 사람들 당이 마침내 유럽발전시민당을 꺾고 1위에 등극하고 반부패 3당(ITN+DB+ISMV)이 합계 112을 얻으면서 여론조사 이상으로 선전했지만, 여전히 과반에 미달한 성적으로 정부 구성 가능성이 상당히 낮은 상황이었습니다.

 

이 와중에 극우 정당들은 21년 4월 총선 전멸에서 위기감을 느낀 나머지 불가리아 국민운동(VMRO)와 의지당 – 불가리아 구원 국민전선(Volya – NFSB)이 합당하여 불가리아의 애국자들이라는 선거연합체를 구성하고, 불가리아 국민연합처럼 불가리아의 여름과 같은 중도성향 정당명부에 참여하며 온건화 된 면모로 다가가려 노력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이 무색하게도, 민주화 이래 불가리아 역사상 최저 투표율(41%) 속에서 극우파 유권자들 상당수가 투표장에 나가지 않으며 7월 총선 역시 전멸당하는 결과만을 안고 가게 됐습니다.

 

한편, 전통적 양당을 구성하던 불가리아 사회당 선거연합체 구성원을 다 합쳐야 간신히 불가리아 민주당에게 제3당 자리를 지켜낼 정도로 쇠락하였습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스타니슬라프 트리포노프 ITN 대표는 과반 연정 목표를 뒤로 하고 본인이 아닌 다른 총리 후보를 내세운 단독 소수정부를 구성하겠다면서, 반체제 3당(ITN+DB+ISMV) 뿐만 아니라 유럽발전시민당  불가리아 사회당 의원 이탈표를 기대하였습니다.

 

만약 이번에도 정부 구성에 실패할 경우, 잦은 선거에 대한 피로감에 더해 그해 말에 있을 대통령 선거 때문에 실권은 적어도 연정 구성을 조율할 대통령 선출을 놓고 또 충돌이 발생할 수 있기에 3차 총선 시점에 대해서 정치권의 부담이 매우 커질 전망이었습니다.

 

그러나 스타니슬라프 트리포노프 ITN 대표가 연정 협상 과정에 있어서 자당 총리 후보를 같은 반체제 정당들에게도 강권함에 따라 연정 협상은 완전히 실패하였으며, 이에 실망한 반체제 중도 유권자들이 지리한 협상의 원인이 된 ITN에 대한 기대를 버리고 새로운 대안을 찾아봄에 따라 ITN의 지지율은 급속도로 추락하였습니다.

 

이후 유럽연방주의 정당인 Volt 등이 ISMV(IBG-NI로 개명)에서 탈퇴하여 인기가 높던 41세의 젊은 임시 경제장관 키릴 페트코프와 손을 잡고 반체제 중도 친EU 정당인 우리는 변화를 지속한다(PP) 정당 연합을 창립하면서 기성정치를 닮아가는 것에 실망하던 구 반체제 3 지지층을 중심으로 급속도로 영향력이 확대됐습니다.

 

그 뿐만 아니라 총선을 거듭할수록 불가리아 사회당 지지층 반체제 중도 정당으로 유입되는 경향이 계속됨에 따라 그 선두 주자가 된 PP가 가장 큰 수혜를 입었습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불가리아 대선은 사회당 PP, ITN, IBG-NI DB를 제외한 거의 대부분의 좌파/반체제 야권 세력의 지지를 얻어낸 루멘 라데브 현 대통령(동구권 혁명 이래 쭉 무소속)이 여론조사에서도 유럽발전시민당 후보에 비해 압도적인 지지를 얻으며 결선 없이 1차에서 확정 지을 가능성까지도 보였습니다.

 

그리고 21년 11월 14일 치러진 불가리아 대선 및 총선 결과, 루멘 라데프 대통령은 간발의 차로 과반 달성에 실패하며 일주일 후인 11월 21일에 있을 결선 투표에서 아나스타스 게르지코프 유럽발전시민당 후보와 맞붙게 됐으며, 총선에서는 우리는 변화를 계속한다 정당연합이 2차 총선에서의 ITN 돌풍을 고스란히 물려받으며 1위로 올라서는데 성공했습니다.

 

반면 사회당은 급락세가 이어지며 4위로 추락하고 다음 총선에선 두 자릿수 득표율 유지도 위태로운 처지가 되자, 코르넬리아 니노바 사회당 대표가 대표직 사임을 선언했습니다. 여기에 더해 득표율이 크게 하락한 DB 공동대표 중 한 명 등 이번 선거에서 부진했던 정당 대표 여럿이 사임을 결정하며 정국이 개편되고 있었습니다.

 

한편, 고만고만한 극우파 정당들 중 하나였던 부활당은 몸집 불리기 노선을 택했던 불가리아의 애국자들 애국전선으로 바뀌고도 부진하는 사이, 현 북마케도니아 지역까지 포괄하는 대 불가리아주의를 공공연히 외치며 민족주의자들을 자극하는데 성공하면서 우파 표 상당 지분을 확보하여 원내 진입에 마침내 성공했습니다.

 

그 와중에 연정협상의 주도권을 쥐게 된 키릴 페트코프 PP 대표 DB ITN과의 협상에 집중할 것을 선언했으며, 선거 전문가들은 PP, ITN, DB 뿐만 아니라 사회당과의 연정 가능성(134/240)도 점치던 상황에서 실제 협상도 그렇게 흘러가게 됐습니다.  

 

게다가 이러한 와중에 21년 11월 21일 치러진 대선 결선 결과, 모두의 예상대로 루멘 라데브 현 대통령이 더블스코어라는 압도적 지지 속에 재선에 성공하였으며, 이는 일찌감치 지지선언을 한 키릴 페트코프 PP 대표가 연정 협상 우선권 등을 부여받고 해당 권리를 지속하는 데에 도움을 줘 내각 구성 속도를 내는 데에 호재가 되었습니다.

 

다만 21년 11월 24일 합산 결과, 두 차례의 대형 선거 모두 투표율이 40%도 못 넘길 정도로 형편없이 낮게 나오면서, 정치혐오를 넘어 극도의 정치 무관심 층이 매우 확대되어 잠재적 민심과 선거 결과와의 괴리가 커졌다는 점이 향후 정부 지지율 안정도에 있어 심각한 불안정 요인이 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우려되었던 대로 페트코프 총리의 도시권 고학력층에 기반한 선풍적 인기를 등에 업고 순항하는 듯했던 3차 총선 내각 역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라는 격변기를 맞아 난파에 휘말리게 됐습니다.

 

열렬한 친EU 성향의 제1여당 PP와 제3, 4여당 ITN, DB, 제1, 2야당 GERB, DPS 등이 그 이념과 EU 주류 여론에 동조하여 반러 노선을 취하긴 했으나, 오랜 정교회 전통과 공산시절 등에 기반한 러시아와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인적 교류로 인해 시민들 사이의 친러 정서는 전쟁에도 불구하고 상당부분 남아있었습니다.

 

여기에 더해 전쟁으로 인한 인플레와 경제난이 심화되어 대통령을 제외한 내각 및 반정부 정서가 힘을 받자 극우 친러파 부활당이 경제 대응 비판을 무기로 친러 극우라는 약점을 상쇄하는데 성공하였습니다.

 

이러한 가운데 스테판 야네프 전 임시내각 총리 및 페트코프 내각 국방장관이 친러 친푸틴 논란으로 쫓겨난 후 창당한 신생 강경 우파 주도 포괄정당 일어나라 불가리아 또한 경제난과 불가리아 시민사회의 광범위한 암묵적 친러 성향을 타고 발언권이 강해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불가리아 사회당 역시 공산정권 시절부터 이어져 내려온 친러 성향 노년층 지지기반이 남아있어 이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대 우크라이나-러시아 정책을 놓고 분쟁의 소지가 이어지던 차에, 22년 6월 ITN이 국가 예산안이 인플레 불황 와중의 재정 건전성 충족에 부족하고 북마케도니아의 EU 가입에 대한 페트코프 내각의 승인 결정에 동의할 수 없다며 불가리아 민족주의 및 재정보수주의에 편승하여 야당들(GERB, DPS, V)의 내각 불신임에 가담하는 사태가 벌어졌습니다.

 

그 결과, 과반을 상실한 페트코프 내각(109/240)은 1년도 못 가서 임시 내각으로 전락하고 그나마 인기 있던 라데프 대통령의 헌법에 따른 결정 하에 10월 2일에 4차 총선이 치러지게 됐으며, 조기 총선 원흉으로 친정부 유권자들에게 미운털이 박힌데다 야권과도 그닥 사이가 좋지 않던 ITN은 대표의 독단적 결정으로 인한 연정 붕괴 책임론을 진 와중에도 이렇게 된 이상 대통령제로 가야한다고 주장하는 무리수를 두면서 정치적 무게감을 완전히 상실하고 말았습니다.

 

위와 같은 정치적 혼란 속에서 DPS의 스캔과 이질적 집단으로 인한 부정적 이미지는 상당히 희석됐으며, 러우전쟁 와중에 터키의 존재감이 떠오르면서 간접적으로 힘을 얻은 끝에, 낮은 투표율 속에도 지지층의 높은 참여가 이어지며 17년(9%, 26석)에 비해 의석과 득표율을 크게 불릴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총선이 치러지는 와중에도 불가리아는 유럽 대부분의 국가들(평균 80%대)과 달리 러시아발 가스관 봉쇄에 대비하기 위한 가스 터미널 완충이 미진(60%대)하여, 비슷한 수준이나 반러 감정이 강하고 최근 총선에서 집권 여당이 승리한 라트비아와 달리 다가올 겨울에도 연료 문제를 놓고 또 한 번의 정치적 격변이 닥칠 가능성이 두드러지고 있습니다.

 

 

출처 목록 링크

https://twitter.com/Politicx_/status/1575445735738417153

https://twitter.com/ElElectoral/status/1576893610296938496

https://twitter.com/politics_bg/status/1577212929484750848

https://twitter.com/politics_bg/status/1577590777848512512

https://twitter.com/politics_bg/status/1576943318000631814

https://twitter.com/politics_bg/status/1515684475031666695

https://twitter.com/EEPolls_123/status/15569261614222622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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