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중화민국 총통 선거 최종결과(투표율: 71.86%[-3.04])
라이칭더(민주진보당, 범록연맹): 40.05%(-17.08)
허우유이(중국국민당, 범람연맹): 33.49%(-5.12)
커원저(대만민중당, 제3세력): 26.46%(+22.20)
라이칭더 부총통 6.56%p차로 총통 등극
2024년 중화민국 입법원 선거 최종결과
범람연맹(중도우파-우익, 중국국민당+원주민계): 52석(+12)
범록연맹(중도-중도좌파, 민주진보당+대만기진): 51석(-11)
제3세력(중도-중도좌파, 대만민중당+시대역량): 8석(=)
기타 정당/무소속(범야권): 2석(-1)
여당연합 범록연맹 과반 및 제1여당 민진당 제1당 상실
제1야당 국민당 제1당 등극, 대만민중당 캐스팅 보트 확보
전체 의석: 113석(소선거구: 73석, 원주민 중선거구: 6석, 전국비례대표: 34석)
과반 의석: 57석
비례대표 봉쇄조항선: 5%
* 지난 이야기 및 hakzomlb564783님이 쓴 글과 보면 더욱 좋은 글입니다:
https://gksejrdn7.tistory.com/56
https://gksejrdn7.tistory.com/85
https://blog.naver.com/gksejrdn7/223048638922
https://blog.naver.com/gksejrdn7/222939849215
https://blog.naver.com/gksejrdn7/222617245463
https://blog.naver.com/hakzomlb564783/222936403399
지난 22년 11월 26일 치러진 대만 지방선거 결과, 민진당은 그해 중순까지만 해도 2018년 지방선거의 설욕전을 꿈꾸던 상황이 완전히 붕괴되고, 타오위안, 신주, 지룽을 빼앗기고 텃밭인 타이난 시를 5%p차로 간신히 확보하며 가오슝에서 국민당 40% 선전으로 차기 주자 천치마이의 경쟁력이 훼손되면서, 6대 도시(타이베이, 가오슝, 신베이, 타이난, 타이중, 타오위안) 중 4:2, 전체 21개 지역 중에서 13:5:2:1이라는 1986년 민주적 지방선거 개시 이래 최대 참패를 맛보고 말았습니다. (12월 18일 늦은 선거 치르는 자이 시장 제외)
이러한 결과로, 차세대 주자인 라이칭더 부총통(63세), 천치마이 가오슝 시장(57세)의 입지가 비교적 축소되고 천스중 타이베이 시장후보(68세)는 위생복리부장관 시절의 집단감염 사태 후폭풍을 결국 이겨내지 못한데다, 차이잉원 총통(66세)은 패배 책임을 지며 당대표직에서 물러나야만 했습니다.
반면에 국민당은 일찌감치 상실한 가오슝에 이어 먀오리, 진먼, 펑후를 추가로 잃었으나, 훨씬 대도시인 타이베이, 타오위안, 그리고 지룽을 확보하면서 내용면에선 그야말로 압승했습니다.
그리고 지지기반이 탄탄한 차이잉원 총통의 출마가 불가능한 24년 차기 대선 주자 리스트에서 중도적 노선으로 인기를 얻은 허우여우이 신베이 시장(65세), 잔혹한 노동조건에도 불구하고 입지전적인 경제인 신화와 대표적 대중 온건파로 주목받은 궈타이밍 폭스콘 전 회장(72세), 지방선거 대승을 이끈 주리룬 당대표(61세) 등에 이어 차세대 주자로 타이베이에서의 10%p차 승리를 이룬 장완안 타이베이 시장(44세)을 확보하면서 친중 논란 후유증 및 한궈위 사태로부터 완전히 탈피할 수 있게 됐습니다.
한편, 10%대 전국 득표도 노리던 대만민중당은 잠시나마 1위 경쟁을 하던 타이베이에서 25% 득표로 인해 큰 격차로 패하고 신주시만을 확보하면서, 과거 친민당과 쑹추위의 위치 이상을 노리던 커원저 시장의 원대한 꿈과 달리 먀오리와 진먼에서 친-민중당계 무소속이 승리한 부수적 성과에 만족해야 했습니다.
그런 와중에, 함께 치러진 선거연령 하향 국민투표가 홍보 및 준비 부족으로 인한 관심 저하 속에 찬성인수 미달로 부결되면서 아쉬움을 표한 민진, 국민 양 측 중에서도 집권당이자 청년층 흡수를 기대하던 민진당 측의 타격이 더욱 커지게 됐습니다.
또한 12월 18일 치러진 자이 시장 선거 역시 국민당의 압승이라는 예상 그대로 끝나면서, 범람연맹은 그야말로 2022년 선거 승리의 화룡점정을 찍은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분위기는 패배로 침체된 민진당이 23년 1월 15일 대표 경선에서 화독 독립 온건파와 대독 독립 강경파를 막론하고 급진파인 라이칭더 부총통으로 신임 당대표를 단독 선출하며 일찌감치 대선 단일 전선으로 뭉치면서 반전될 기미를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당장 장완안 타이페이 신임 시장의 지역구여서 여조 결과 10%p 격차까지 예상되었던 23년 1월 8일 타이페이 3구 재보선이 4.99%p차 국민당 승리로 그치며 지역구 역사상 최소 격차를 보였습니다.
게다가 23년 3월 4일 치러진 난터우 3구 재보선(쉬슈화 국민당 의원의 난터우 현장 당선으로 발생)에선 난터우 현장 출신인 린밍첸 국민당 후보의 8년간 현정 관련 논란과 학위논문 표절 이슈, 아들의 자금 출처가 의문스러운 호화주택 건립 파동이 겹치면서 국민당의 지역 인기가 폭락했습니다.
그 결과, 농업권 관련 활동가이자 민진당 비례대표 출신의 차이페이후이(프리다 차이)의 세번째 지역도전(20년 난터우 2구, 22년 난터우 현장 낙선)에 밀린 나머지 2.10%p차로 패배하며 2008년 소선거구제 도입 이래 첫 난터우 지역구 탈환이라는 민진당의 대성과를 헌납하는 꼴이 됐습니다.
지선 패배에도 불구하고 라이칭더 신임 대표 초반의 분위기가 재보선 선전으로 나쁘지 않자 범록연맹 지지층이 자신감을 되찾고 천젠렌 행정원장이나 정원찬 행정원 부원장 같은 대안 모색이 아닌 라이칭더로 선제 결집하며 23년 3월 18일 부로 일찌감치 민진당 대선후보를 확정 짓는 모습이 두드러졌습니다.
이를 통해 중도파 후보들인 허우여우이 신베이 시장과 커원저 타이페이 전 시장과의 3자 대결(39.3%:27.8%:18.2%), 그리고 허우여우이와의 양자 대결(44.4%:40.2%)에서도 마치 2000년, 2004년 대만 대선과 같은 상대적 우위를 되찾고 있기에 양대 야당 간의 이합집산 여부 역시 주목받고 있습니다.
한편, 대만의 몇 안 되는 수교국(온두라스 외에 교황청과 벨리즈, 에스와티니, 과테말라, 아이티, 나우루, 파라과이, 팔라우, 마셜제도, 세인트키츠네비스, 세인트루시아, 세인트빈센트 그레나딘, 투발루 등 총 14개국)이던 온두라스에서 좌파계열인 시오마라 카스트로 대통령이 취임 1년여만에 중국과의 수교 및 대만과의 단교 추진을 암시하였습니다.
그리고 사실상 가장 안정된 최대 수교국(과테말라, 아이티는 치안 문제 심각)이자 바티칸과 함께 국제적 영향력이 존재하는 유이한 수교국인 파라과이에서도 중국 수교 이익파(콩과 쇠고기 중국 수출 확대 주장) 진보 야권연합 콘세르타시온이 친-대만/미국 보수 집권당 콜로라도당과 접전 구도를 보이면서 대만 정계 및 외교가의 초미의 관심사가 되고 있었습니다.
만일 24년 초 대선 이전에 유이한 대만 총영사관이 있는 양대 국가에서 해당 사태들이 모두 현실화되고 같은 해에 대선 및 총선이 있는 과테말라까지 영향을 미칠 경우, 중국과의 화해를 통한 국제 지위 제고를 외치는 국민당 내 대중 온건파와 수세적 화독 외교에서의 급진적 변화를 촉구하는 민진당 내 대독 강경파 모두가 힘을 받으면서 또다시 정국이 요동칠 전망이었습니다.
일단 파라과이에선 야권 분열(자유주의 진보/대중주의 우익) 속에 산티아고 페냐 콜로라도당 대통령 후보가 대통령과의 거리두기에 힘입어 15%p차로 압승을 거두며 급한 불은 끄는데 성공했지만, 과테말라에선 사법기관의 노골적인 타 후보 밀어주기에도 불구하고 반부패 진보 후보가 깜짝 돌풍을 일으키며 일단은 승리하면서 추이를 지켜보게 되었습니다.
이후 23년 5월 17일, 중간선거 이후 조금씩 주춤하는 허우유이의 대선 경쟁력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압도적인 국민당 내외 후보 경쟁력(최대 대항마 궈타이밍을 두배 이상 앞지르는 의원 및 지자체장 지지선언, 궈타이밍을 두 자릿수 가까이 앞서고 2자/3자 대결에서 간발의 차로 궈를 웃도는 당내 여론조사)을 바탕으로 주리룬 국민당 대표의 열렬한 지지 속에 범람연맹은 경선없이 허우여우이의 총통 후보 지명을 선언했습니다.
이에 반발한 궈타이밍은 경선 직후 여러 번의 돌출발언 끝에 기존의 승복선언을 뒤집고 입당 한달 만에 또다시 탈당하면서 양당 피로감에 힘입어 지지기반을 끌어올리려 했으나, 이미 협력자인 쑹추위의 전성기 이상으로 제3지대를 꽉 잡은 커원저라는 막강한 선점자에 의해 레드오션으로 변해버린 반민진-비국민세력에서 별다른 힘을 쓰지 못하면서 4자 대결 시 최대치 15%에 머물고 말았습니다.
한편 23년 6월까지만 해도 1%대로 내려가며 안정을 찾는 듯했던 물가상승률은 8월 들어 재차 2%대로 올라섰으며 23년 경제성장률도 1.6% 예상치에 그치면서, 7년만에 직장인 실질 월급이 감소하는 사태가 벌어졌습니다.
차이잉원 임기 동안 경제 발전 성과(2016년 집권 이래 계속된 2% 이상 플러스 성장, 20년 코로나에도 3.39% 성장 및 21년 반도체 호황에 힘입은 6.53% 성장)에도 불구하고 계속된 초대형 시장인 중국과의 갈등 악화로 대만 경제의 국제 반도체 시장 의존이 더욱 심해진 상황에서 약간의 불황에도 휘청대는 구도가 만들어져 버리는 것입니다.
안 그래도 공공주택 보급 미비(전체 주택의 0.2%에 불과)로 인한 주택난과 경제발전에도 불구하고 극심한 빈부격차 속에 20년 동안 극도로 낮게 유지된 평균 월급(1인당 GDP가 비슷할 때도 한국 2/3 수준)으로 고통받는 대만 시민들에게 가중되는 경제난은, 차이잉원 총통의 전임들에 비해 나쁘지 않은 국정평가에도 불구하고 더욱 급진파 후보를 내세운 민진당에 대한 불안감 속에 그동안의 열렬한 외교안보기반 지지를 위축시키게 만드는데 충분하였습니다.
반대로 본성인 출신의 청렴하고 정권에 구애받지 않는 능력있는 경찰관이라는 이미지와 함께 신베이 시장 재임기간 보여온 강력한 추진력과 타협정치에 기반하여 반부패 및 범죄척결, 외교안보적 대립과 별개로 대중 교류 개선을 통한 경제 호전을 기치로 삼던 허우유이와 무소속 타이베이 시장을 거쳐 대만민중당을 창당할 정도로 확고한 중도기반을 형성한 커원저는 2020년 차이잉원의 57%에 달하던 화독 기반을 상당부부 잠식하였습니다.
그 중에서도 커원저는 본래 민진당과 협업하던 경력을 이용해 자신처럼 반민진-비독립, 반국민-비독립, 대중 정치외교안보 비판은 계속하되 중국과의 대립구도 일부 해소를 통한 경제 불안 해결로 돌아선 사람들을 적극적 SNS 캠페인을 통해 대거 흡수하였습니다.
그 결과, 민진당의 반중-친서방 외교안보 강화를 무기로 한 사회적 진보, 경제적 보수 정당화 노선(장완안도 반발한 경제자유주의적 노동개혁 등)에 불만을 품고 사회적 급진, 경제 진보, 환경-노동-복지를 외치는 시대역량 류의 구 범록연맹 세력과도 협력하면서, 경제난에 힘겨워하지만 차이잉원 정부의 외교안보사회노선엔 찬동하던 청년층의 열광적 반응을 끌어당겼습니다.
그러나 허우여우이의 여러 설화(타이난 사람 투표 조롱)와 시장 재임 시기 사건들 재부각(영아 사망사건, 금지약물 유치원 투여 사건), 과거사 논란(대만 독립 지향 민주화 운동가이던 정난룽의 분신 투쟁을 초래한 경찰 습격 책임자), 어정쩡한 대중 노선(반중-반독립 지향이나 하나의 중국의 이론적 기반에 이용되는 92공식 수용 논란)으로 당내 친중파(당내 실세인 롄잔 전 주석-롄성원 부주석 부자의 연이은 국공회동 강행) 통제 실패로 그의 지지율은 갈수록 떨어지며 커원저에게도 역전당하는 조사가 조금씩 나왔습니다.
반면 커원저 역시 고정표가 적고 시정 시절의 논란(민진당과의 결별, 사회적 진보파에게 실망감을 주는 시장 시절 언행, 부패 청산 실패, 중앙정치 집중으로 시정 도외시)이라는 약점 속에 30% 벽을 쉬이 뚫지 못하고 여름이 지나면서 구 민진당 화독 중도표와 대응되는 온건보수표가 빠짐에 따라 라이칭더 역전은 고사하고 3위로 재차 추락했는데다, 지역 국민당(가오슝 시의회 전 의장)-민중당(신주시장) 인사의 부패 논란 등이 불거지면서 신선한 이미지를 바라던 시민들에게 실망감을 안겨주며 3자 대결에선 허우유이와 커원저 모두 정권 교체의 희망이 조금씩 흐릿해지게 됐습니다.
8년만의 정권교체를 어떻게든 이룩하고자 국민당과 민중당은 막판까지 단일화 협상에 나섰으나, 노선 차이로 인한 구설수가 계속해서 터져 나온 끝에 여론조사 방식을 놓고 벌어진 충돌로 인해 결국 총통 후보 단일화가 무산(총선 지역구 단일화는 성공)되었으며, 한 자릿수 대로 떨어진 지지율을 견디지 못한 궈타이밍 후보의 사퇴는 그 다음으로 보수파인 허우유이 국민당 후보로 표가 가면서 1위 라이칭더와의 접전 승부를 이끌어내는 데는 성공했지만 역전엔 실패하였습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세 진영 모두 선거 유세를 통해 결과를 판가름 내는 길만 남게 됐습니다. 라이칭더는 여론조사에서 30%도 위태롭던 위기를 일단 극복하긴 했으나 경제적 불만과 외교안보 우려 속에 단 한 번도 40%를 제대로 넘기지 못하며 2위 자리를 굳힌 허우유이와 면도날 승부를 이어갔습니다.
그러나 국민당 역시 막판까지도 민진당을 찍으면 전쟁이 난다는 식으로 중국 위협론을 오히려 부각시키는 역효과 유세를 지속한데다, 궈타이밍 폭스콘 창업자의 커원저 지지 루머가 돌아다니고 락토파민 함유 돼지고기에 대한 우려를 이용한 독성 미국산 돼지고기 가짜뉴스가 퍼지면서 중국의 반미-반민진당 여론전에 국민당이 이용만 당하고 있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일었습니다.
여기다 결정타로 정기적인 중국 귀빈 방문과 국호변경 비난으로 불안불안한 모습을 보이던 마잉주 전 총통이 라이칭더 당선 시 전쟁이 올거라고 말하며 반대로 시진핑의 평화 의지를 믿어도 좋다는 뉘앙스의 발언을 내뱉는 사고를 치면서 망설이던 화독 친-차이잉원/비-라이칭더 지지층이 민진당으로 선거 직전 결집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에 허우여우이 후보는 즉각 임기 동안 통일회담은 생각치도 않는다며 일국양제를 전면 거부한다는 진화 작업에 나섰으나, 부총통 후보 경선으로 이목을 끌었지만 사표론에 힘입어 국민당에게 흡수당하고 있던 커원저 지지층마저도 친중 논란으로 재차 떨어져 나가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이런 상황 속에 치러진 24년 1월 13일 대만 총통/부총통 및 총선 결과, 라이칭더 후보가 막판 여조를 웃도는 40%대 초반의 성적으로 의회 과반 상실 사태에도 불구하고 비교적 안정적이게 정권 재창출에 성공했습니다. 이와 반대로 허우여우이는 본진인 신베이에서도 민진당의 의원 기반을 무너뜨리지 못하고 국민당 전국비례보다도 낮은 성적을 보이면서 원내 제1당 등극에도 불구하고 패배 승복 선언과 함께 쓸쓸히 신베이 시장직으로 돌아가는 신세가 됐습니다.
반면 함께 승복 선언을 한 커원저는 비록 총통 당선과 지역구 당선자 배출엔 실패했지만 사표론을 뚫고 무려 26.5%에 이르는 역대급 3위 성적을 거두었으며, 그에 맞먹는 비례 지지(22.1%)를 기반으로 원외로 추락한 시대역량(2.57%) 자리 대체를 넘어 의회 내에서 캐스팅보트를 쥐게 되었습니다.
현재 라이칭더의 과거 급진적 대독(반중 대만독립) 발언과 노골적인 친중 후보 당선 요구를 일삼던 중국의 언행으로 인해 대만해협을 둘러싼 전쟁 위기감이 극에 달한 상황이지만, 라이칭더 본인부터 당선 가능성 확충을 위해 화독 유권자를 다독이는 온건 노선으로 일단 돌아선데다, 무엇보다 의회 과반을 상실하여 야당들의 눈치를 봐야하는 만큼 대만발 급진성 정책으로 위기가 터질 가능성은 적은 상황입니다.
다만 커원저로 대표되는 구 민진 2030대 청년층과 허우유이로 대표되는 국민당 50대 장년층-원주민-객가인의 공세를 반중 본성인 40대/60대+ 중노년층의 결합으로 이겨낸 라이칭더 당선자인 만큼, 장기집권의 피로감 속에 결과에 실망한 세대들의 불만을 어떻게 다독일 것인지가 정권의 명운을 좌우할 것으로 보입니다.
여기에 실패할 경우, 2000년 대만 대선 수준의 3파전 접전 구도(민진당 천수이볜 39.30% Vs 국민당 무소속 쑹추위 36.84%: 국민당 롄잔 23.10%) 예상에서 호전된 편인 이번 대선이 다음 선거엔 2004년 대선 구도(천수이볜 50.11%:롄잔-쑹추위 49.89% 초접전, 천수이볜 피습) 이상의 극한대립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큰 상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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